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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엄마와 성인해외입양인과의 신안섬마을 우이도캠프 .<kim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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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화영아원 작성일05-06-24 09:02 조회6,3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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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은 어릴때 미국으로 입양, 대학생이 되어 나를 낳아준 엄마와 한국을 알고자 이화에서 진행하고 있는 해인입양인 나의뿌리찾기 2005.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한국에, 이화에, 신안섬마을에 다녀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래 설계가 분명한 숙녀로 자라 우리 모두 앞에 나타났다. 자라면서 나의엄마를 그리며 만나고픈 마음을 이화어린엄마들과 함께 하면서 '나의엄마가 바로 이 어린엄마였구나, 이 어린엄마들의 마음이 바로 나의낳은엄마 마음이었구나!를 깊었던 밤 파도소리 반주되어 날이 샌 새벽 안개 걷힌 탁 트인 바다에 떠 오르는 우이도는 아침해는 그래서 더욱 더 찬란하였구나! 내가 낳은 딸도 아들도 이들처럼 엄마를 그리며 만나러 와 이렇게 이야기 할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린엄마였던 나의 아픔, 희망을 실어 입양인들의 가슴 속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더니 두 볼에 흐른 던 눈물은 왜 그리 하염없었던고! (그래서 우이도 소금은 그렇게 유명하였더라....) 글쓴이: 김 델 가르시오 Kim Del Guercio 옮긴이: 장평수 미국 달라스 주립 정신보건병원장, 달라스 정평수 정신심리 클리닉 원장 편지 서문 나는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자라면서 가슴속에 많은 번민과 많은 질문을 가지면서 자랐다. 이제 대학생이 되어서 나의 뿌리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이화영아원에서 운영하는 한 프로그램-해외입양인 나의 뿌리 찾기 -을 알고 큰 결심을 하여 2005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어리고 가냘픈 한 소녀가 아니라 이제 어엿한 숙녀로 선팅된 피부같이 까무잡잡해서 탄력이 있고 유난히 큰 눈, 그리고 아름다운 숙녀로 자라나 어엿한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이제 나에 대한 정체성을 정리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숙녀로 나의 고향에 나타나게 되었다. 자라면서 나는 얼마나 나를 낳아 주신 엄마를 부르며 만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이번 이화영아원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생모들을 만나면서 나는 까마득한 옛날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 나의 엄마가 바로 이 어린엄마였구나! 이 어린엄마들의 마음이 바로 나를 낳아주신 엄마 마음, 그리고 부드러운 살결이구나!" 생각하면서 얼마나 마음속으로 울었는지 모른다. 우이도의 파도소리가 내 가슴 속에 밀려와 온 방에 부딪혀 부서지듯 엄마를 생각하면서 첫날밤을 지새다 짧은 잠에서 깨어 지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을 때 엄마의 품속처럼 따스한 햇살이 찬란하게 나를 비추며 감격하게 한 아침이 밝아왔다. ***옮긴이 주: 글 중에 나오는 바다는 김델 가르시오님이 어머니를 비유적으로 사용한 단어입니다. Kim Del Guercio It has been a long-held belief that the ocean, in all of its expansive mystery, holds some innate healing powers. 크나 큰 모든 신비를 가지고 있는 바다는 고유한 치료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은 오랜 기간 간직해 온 믿음이였습니다. With the advancement of technology and the growth of our knowledge about science, however, many people are doubtful of the so-called “magic” of the sea. 과학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바다가 간직하고 있는 신비함에 의심을 품고 사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Despi this skepticism, I continue to believe that there is something special about the ocean, that the cleansing properties of the water and the constant rhythm of the waves hold abilities to purify the soul. 마음 한 구석에 회의주의의 마음이있음에도 나는 나의 영혼을 정화시키기 위해 항상 고동치는 파도와 물로 깨끗하게 하는 결정체인 바다에 대해서 나는 어떤 특별한 신비함이 있다는 것을 계속 믿을 것이다. kfter my recent trip to Uldo Island, where I had the opportunity to probe deep into my thoughts about adoption, my convictions about such matters have only been strengthened. 최근 내가 입양에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된 기회가 된 우이도 여행 후에 나의 어머니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나의 확신은 점점 강해져왔다. When we first arrived on Ildo Island, it was as if we had stepped into another time period. 맨 처음 우리가 우이도에 도착했을 때 마치 다른세계에 발을 디딘 것 같았다. Life seemed so relaxed and so slow, following the gentle tempo of the all-encompassing ocean. 온 사면이 바다로 싸여 바다로부터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는 모처럼 나의 생활에 포근함과 쉼을 주었고 We walked along tiny curving streets, watching local women work on their land and the men casting their nets into the water. 우리는 좁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걸으며 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시골여인과 고기를 잡기위해 바다로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After securing our belongings with a friend of Miss Kang’s, the 6 of us—two adoptees, two birth mothers, and two workers—spent the afternoon exploring the beach and climbing sand dunes, exhilarated by the ocean air and each other’s company. 강원장님의 한 친구가 잘 있는지 확인한 후에 우리 6명 일행들-두 명의 입양된 자, 두명의 생모, 그리고 원장과 사회복지사-들은 신선한 바다 공기를 마시며 서로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해변을 걷거나 모래 언덕은 오르며 첫날 오후를 보냈다. There was an obvious language barrier between us, yet it posed no problem; smiles, pointing, and laughing are universal. 우리들의 사이에는 분명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그건 보편적인 언어인 생긋생긋, 웃는 미소와 손짓발짓을 하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That night we all gathered in one of the bedrooms and talked about things all girls can relate to: boyfriends, shopping, and the latest television dramas. 그날 밤 우리는 한 방으로 모여서 처음에는 친한 여자친구끼리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들-남자친구이야기며 쇼핑 그리고 최근 텔레비전 연속극-등을 이야기 했는데 It was then that conversation turned to more serious matters, matters that brought us all together in the first place.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속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With Miss Kang’s coaxing, Pearl and I started to talk about the consequences of our births and adoptions. 강원장님께서 용기를 주셔서 나와 펄은 우리의 출생과 입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The birth mothers then had a chance to ask us questions about how we felt about our own natural mothers and adoptive parents. 그런데 두 명의 생모는 우리에게 낳아주신 엄마에 대해서 느낌은 어떤지, 그리고 길러주신 양부모에 대해서 어떠한지 물었다. At first, our discussion seemed a bit reluctant; both parties were apprehensive to hear the others’ answers, afraid they would hear something they didn’t want to. 처음에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서로가 약간 망설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기대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As we continued to talk about our adoptions, it was as if all of our emotions were liberated at once. 우리가 입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우리들의 걱정하는 마음들은 즉시 내려놓게 되었으며 Both words and tears started flowing freely, released after building up behind a wall of stoicism for so many weeks, months, and, for some, years. 그 동안 수 주간, 수개월, 아니 그 많은 세월 동안 마음속에 회의와 번민의 울타리를 만들어 온 우리들의 마음들이 풀어헤쳐져 대화하는 도중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Our discussion exposed many topics that I had been pondering ever since I can remember: 우리들의 이야기는 내가 자라오며서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많은 생각들도 이야기가 되었는데 즉. Did my birth mother miss me? Did she even think of me anymore? Did she ever regret wanting to have an abortion? What was she thinking when she first saw me? 나의 어머니 얼마나 나를 보고 싶어 할까? 내 어머니는 나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나의 어머니는 나를 입양했던 것에 대해 후회할까? 엄마가 나를 처음 본다면 무슨 말을 나에게 할까? 등이었다. Questions like these were answered honestly by the birth mothers, helping me to understand my own natural mother’s situation more clearly.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참석했던 두 명의 생모들로부터 나의 어머니, 나의 생모와 나를입양하게 된 생황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The birth mothers were eager to have us answer their own questions, wondering if we ever felt abandoned or if we had any hostile thoughts about our birth mothers for giving us up for adoption. 이번에 참석한 두 명의 생모가 우리들로부터 대답을 듣길 원했다. 버려졌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아니면 생모가 우리를 포기했다는 것 때문에 마음속에 어떤 미움이 없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The multitude of answers coming from mothers and daughters were comforting to both. 어머니(생모)와 딸들(입양아)의 관계 속에서 오는 많은 차원의 질문들은 생모나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함을 가져다 주었다. It was a great affirmation for me to hear the answers that I always wished I could hear, that my birth mother did love me despite of my unplanned conception; and although I didn’t want the birth mothers to be upset, 이 대화는 내가 마음속에 항상 듣고 싶어 했던 소망들, 내가 어머니를 화나게 만들 생각은 없지만 묻고 싶었던 것 즉 갑작스런 임신에도 나의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긴 했던 것일까?에 대한 바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it was a relief to see that they were as emotional about the situation as I was.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이 그들과 내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하나의 위안이 되었다. From talking for so long about this subject, it occurred to me that both birth mothers and daughters held the same fears and worries, but also the same hopes for each other’s futures.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랬동안 이야기를 함으로써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생모나 입양아인 우리들도 모두 똑같은 두려움과 걱정을 가졌으며 또한 서로서로 미래에 대한 똑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Each wanted the other to have a happy and fruitful life, and, most importantly, to love the other without any hint of animosity. 그것은 각기 서로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인생의 좋은 열매가 열리기를 .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어떠한 악감정이 없이 다른 쪽을 사랑하기를원하는 마음이었다. After the conversation, we were all exhausted, both physically and emotionally. 긴 이야기 후 우리 모두는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 해 있었다. As I went to sleep that night, I couldn’t help but think of my own birth mother with a new sense of tenderness. 나는 잠자리에 들었을 때 비록 어머니가 나의 이부자리를 깔아주지 않았지만 나는 새롭고 온화한 느낌을 가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평안히 잠들 수 있었다. Right now I don’t know if I will ever be able to meet my natural mother, but, for once, I can accept that. 지금은 내가 나의 생모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한다. For even though I may never meet her or be able to ask her the questions I have been holding for so long, it is if she has answered me through the voices of the birth mothers during that night. 내가 나의 생모를 결코 만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지니고 살아온 나의 질문들을 물어 볼 수 없다고 할지라도 오늘밤 두명의 생모들의 이야기들은 이미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습니다. The next day we left Ildo, but the events that occurred there will always be with me in my heart and my mind. 다음날 우이도를 떠났지마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내 마음 속 깊이 진정으로 나아 있을 것입니다. As the boat departed, I watched the island disappear into the distance, far away in the horizon. 우이도에서 배가 떠나는 날 그 섬이 수평선 저 너머로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I felt as if I had left a piece of myself there to rest among the beaches and rocks, that all of my fears of insufficiency and abandonment had been lifted off of my shoulders and I was finally at peace.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채워지지 않는, 그리고 버려짐에서 기인한 나의 모든 두려움들을 그 섬의 돌들과 해변 어딘가에 나의 마음의 한켠을 내려놓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으며 끝내 나는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었다. 번역후기 글을 번역하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답니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한 이화영아원 원장님과 그 가족들의 노력에 감사한 마음도 너무 크게 다가옵니다. 또한 20여년을 어머니를 그리며 살아온 김 가르시오님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절규를 느낄 수 있었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또한 먼 이국땅에 귀한 핏덩이를 보내 놓은 어머님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더더욱 마음이 아파 글을 옮기면서 울어 봅니다. 저도 길게는 부모님과 8년을 떨어져 산적이 있어서 더욱 저의 마음에 아픔이 옵니다. 며칠 전 제가 사는 달라스에는 입양인 가족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많은 가정이 초청되어 같이 한식으로 저녁 만찬을 하면서 서로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매년 달라스에서는 입양인들을 초청하여 서로간의 한 핏줄임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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